관념의 상실 (1970 - )
피에르 초이(최관영)는 파리 유학 후 귀국하여, 평준화된 기성복 앞에서 개개인의 얼굴이 지워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옷이 모두가 똑같이 입어야 한다는 관념을 지워내기 위해 명동에 '관념의 상실'을 오픈했습니다.
획일화된 의복 질서에 균열을 내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산실의 시작이었습니다.
파리에서 개개인의 개성을 마주했던 피에르 초이는 서울에서 동일화의 억압을 마주했습니다. 1970년 국민생활발표회에서의 획일화된 평준화복에 저항하여, 이듬해 명동 골목에 옷에 대한 생각 자체를 의심하는 '관념의 상실' 공간을 열었습니다.
새 옷을 짓기보다, 거리의 옷을 직접 해체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짜는 리폼 퍼포먼스를 행했습니다. 아이디어가 단 한 벌의 옷으로 승화되는 고유의 컬렉션이었으며, 복제하는 순간 획일화가 반복된다는 신념으로 같은 옷을 결코 두 번 짓지 않았습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단 한 벌만을 짓던 수공업적 저항 방식은 시스템으로 복제되거나 전수될 수 없었습니다. 피에르 초이가 작업 일선에서 물러난 후 브랜드는 이름만 남은 채 긴 정지 기간을 맞이했으나, 그의 정신과 의심의 태도는 기록으로 보존되었습니다.
산실 SANSIL (2026 - )
2026년, 관념의 상실은 '산실(SANSIL)'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하며 새로운 저항을 전개합니다.
정장, 고가 브랜드 등 신뢰와 계급을 읽게 하는 현대의 '무형의 유니폼'은 옷차림이 사람을 통과한 이미지로만 서로를 읽게 만듭니다.
산실은 로고와 화려함을 덜어내고, 옷이 사람을 규정하지 않으며 사람이 옷을 입을 뿐이라는 태도로 침묵의 의복을 지어냅니다.